서울시교육청의 체벌 전면 금지 방침이 적용된 첫 날인 1일. 언론에서는 "학교 현장 혼란 가중", "교사들의 불만 고조"등을 강조하는 기사가 쏟아졌다.
체벌 금지 방침에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혀온 한국교원 총연합회는 "빼앗긴 '교편' 교육자는 통탄한다"라는 논평을 내놨다. 이들은 "교육적 벌까지 없애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교육적 체벌을 한 교원을 징계할 경우 소송지원 및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체벌 금지'에 반발하는 대부분의 근거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지난 9월 성찰 교실 격리, 생활평점제, 학생자치법정 운영 등을 체벌 대체 프로그램으로 제시했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여전히 해보지도 않고서 "체벌하지 않으면 학생들을 지도하기 힘들다"고 불평한다. 일명 '사랑의 매' 논리다.
당연히 교사들은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억누르고 학생들은 이에 반항하는 구조에서 단지 '체벌'만 없앤다고 학생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서울시 교육청이 '체벌 금지' 정책을 내세웠을 때부터 교사나 학부모 사이에서는 "체벌 금지 만큼 중요한 것이 대안이고, 대안만큼 중요한 것이 운영하는 주체"라는 지적이 많았다. 학교 현장의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한계는 분명하다는 지적이다.
그런 면에서 경기도 용인시의 흥덕고등학교는 좋은 사례다. 올해 3월에 개교한 이 학교는 설립 때부터 체벌 조항을 만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체벌 금지 학교로 이름을 알린 여타 학교들이 흔히 쓰는 벌점제조차 없다. <프레시안>은 '체벌 없는 학교'로 만드는 과정에서의 경험을 듣고자 1일 흥덕고 교사와 학생을 인터뷰했다.
신설 학교이기 때문에 학습 분위기 정착이 쉬웠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용인은 비평준화 지역이라 신설 학교인 흥덕고는 학생들의 지망에서 후순위로 쳐진다. 성적이 좋은 학생들이 모인 학교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래서인지 이 학교에서는 초·중학교 때 주로 체벌의 대상이 되어온 학생들이 많았다. 박정달(63) 교감은 "결코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정달 교감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체벌을 받아온 아이들이 갑자기 체벌 없는 문화에 적응하는 게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정 정도 혼란스러움이 없지 않았죠. 처음에 학생들은 '체벌을 안 한다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것'처럼 인식했고 이럴 때 교사들은 생활 지도의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요.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학생들도 막무가내로 잘못들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죠.
'체벌 금지'는 흥덕고를 이끌게 된 이범희 교장(49)과 박정달 교감의 철학이 반영됐다. 평교사 출신이면서 내부형 교장 공모로 이 학교에 부임한 이범희 교장은 '참여와 소통을 통한 희망과 신뢰의 공동체'를 표방했다. 그는 수업 혁신모임인 '참여소통교육모임'의 회장을 맡기도 하면서 '교육 혁신'을 강조해왔다.
흥덕고는 입학식에는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 선물하는가 하면 개교 한 달뒤에는 비전 선포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흥덕고 학생들은 "친구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흥덕인이 되겠다"라고, 교사들은 "한 명의 학생이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상처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했다.
장미꽃을 주는 선언식에서 보이는 것처럼 흥덕고가 '체벌 없는 학교'로 자리잡는데에는 교사들의 노력이 컸다. 학생이 잘못했을 때 운동장을 뛰게 하더라도 교사가 같이 뛰며 상담을 했다.
박정달 교감 : "선생님들이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열심히 상담했죠. 또 선생님과 학생이 운동장을 같이 뛰면서 이야기하는 시간도 가졌고 정도가 심하거나 잘못이 누적된 아이들은 교감, 교장 선생님 상담을 했고요. 심한 경우엔 학부모를 소환하는 방법도 썼죠.이런 과도기를 거치면서 체벌 없는 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되고 학교 분위기가 자율적으로 정착될 수 있었습니다."
흥덕고의 이상우 학생회장은 이러한 교육 방식이 가장 큰 효과를 본 부분으로 '흡연'을 꼽았다. 흡연 문제는 대부분의 학교에서 해결 하지 못하는 '난제'다.
이상우 학생 : "우리 학교에서는 담배를 피다 1차로 적발되면 금연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그래도 2차로 걸리면 일주일 동안 담임 선생님과 함께 운동장을 돌고 금연 프로그램에 다시 참여하기로 했어요. 선생님이 함께 운동장을 도니까 미안함은 배가 되죠. 요즘은 흡연하다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아주 가끔 꽁초가 발견될 때는 있지만 현장 적발은 근래에 없었습니다."
교사들의 노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박정달 교감은 학생들의 참여를 강조했다. 흥덕고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참여한 가운데 석달 간의 토론을 통해 학교규칙을 만들었다. 학생들이 가장 민감해 하는 복장에서부터 체벌까지 함께 규정을 만들어갔다.
박정달 교감 : "합의를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체벌없는 학교를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게 하는 기회였습니다. 애초에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합의를 본 부분이기 때문에 선생님들도 '체벌 없음'에 동의했고요. (학교 선택권에 있어서 후순위일 수밖에 없는) 신설학교이다 보니 상처입고 자존감이 낮은 학생들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많고 그렇기 때문이 이 아이들이 교육을 통해 즐거움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체벌이 없어야 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라고 체벌 없는 학교 전면 시행을 적극 찬성했죠. 삶을 긍정하고 미래를 그려가는 과정에서 학생은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박정달 교감이 '체벌 없는 학교'에 희망을 거는 이유는 오랜 기간 교육자로 지내오면서 '체벌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도 교사로서 평생을 아이들을 지도해 왔지만 체벌이라는 것이 그 어떤 것도 변화시키지 않는다"며 "체벌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부분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는 학생도 마찬가지다. 이상우 학생회장도 박정달 교감과 비슷한 주장을 내놨다. 이 학생도 중학교 때 까지는 체벌이 이뤄지는 학교를 다녔다.
이상우 학생 : "중학교 때 수업 시간에 졸았다가 많이 맞았던 경험이 있어요. 교무실로 불려가 맞았는데, 체벌이라는 것이 그 당시에는 잠깐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짐들이 느슨해지는 것 같아요. 지금은 벌을 받아도 소명기회를 주고, 선생님들이 또 그런 것들을 인정하고 이해해 주시니 기본적으로 소통이 가능한 구조죠. 체벌 없는 학교는 긍정적인 면이 많아요. 다른 학교에도 도입하는 데 적극 찬성 합니다"
흥덕고에서는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들 자신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같이 치유해야 문제가 온전히 사라진다고 본다. 그래서 더욱 근본적으로 학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흥덕고는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란 프로그램에서 학부모들을 집단으로 상담하고 있다.
다만 박정달 교감은 '체벌 없는 학교'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보완 프로그램과 교육청의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박정달 교감 : "신설학교이다 보니 학급 규모가 작아 보건 교사도 상담교사도 없었어요. 선생님들 수도 적어서 문제 있는 학생들을 일일이 담당하기가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죠. 매년 생겨나는 신설 학교와 '체벌 없는 학교'를 정착 이런 학교들의 정착시키기 위해선 교육청에서 생활지도 팀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지원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학생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겁니다."
다행히 흥덕고는 2학기부터 '위 클래스(Wee Class, 학생들이 학교에 잘 적응하도록 돕기 위한 전문 상담 공간)'를 경기도 교육청으로부터 지원받게 됐다. 전문 상담 교사와의 상담을 통해 아이들은 육체적 체벌보다 더욱 가치 있는 깨달음을 얻어갈 수 있으리라는게 박 교감의 기대다.
박 교감은 체벌 없는 학교로 '혼란'을 호소하는 일선 학교들에게 충고를 내놨다.
박정달 교감 : "체벌 없이도 지도 될 수 있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준비가 되고 나면 체벌 없이도 충분히 교육할 수 있어요. 지도가 필요한 학생들이 많은 학교는 교육청에서 더 지원해주면 됩니다. 혹은 우리 학교와 같이 외부 자원 봉사단과 협약을 맺는 것도 방법이죠. 학교 차원에서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겁니다. 학생, 교사, 학부모가 힘을 합치면 체벌 없는 학교는 불가능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