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05-01-03 00:25]
[동아일보]
《#1 초등학교 4학년 은진 양이 선생님의 지명을 받고 일어서자 같은 반 친구들이 그의 장점을 앞 다퉈 발표한다. 학생들은 서로의 장점을 파악하게 되고 또 각자의 장점을 개발하려 노력한다.(장점 말하기)
#2 친구들을 ‘왕따’(집단따돌림)시키곤 하는 초등학교 5학년 정호 군은 반 친구들과 상황극 방식으로 재현하면서 피해자, 방관자 등의 역할을 해보고 그 느낌을 얘기한다.(입장 바꿔 생각해봐)
#3 의사가 꿈인 초등학교 6학년 동현 군은 위인전 등을 통해 본 슈바이처의 생활태도와 자신의 생활태도를 비교해 발표한다. 슈바이처가 사회를 위해 헌신한 점을 생각하며, 방학동안 동네 노인회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내가 존경하는 사람 닮기)》
올해부터 초등학교 4∼6학년생들이 학교에서 받게 될 인성(人性)교육 방식이 이렇게 확 바뀐다.
지금까지는 도덕 시간에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식으로 이뤄졌지만 앞으로는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체험을 얘기하고 토론하며 능동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도입되는 것.
교육인적자원부는 ‘초등학교 자기리더십 프로그램’으로 불리는 교재를 제작, 전국의 초등학교에 배포해 올해 신학기부터 재량수업 과정에 포함시키고 매주 1회 수업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2일 밝혔다.
▽무엇이 바뀌나=모두 6학기(매 16주씩) 과정인 이 프로그램은 개개인이 가치관과 판단력을 스스로 기르도록 했다. 교재도 딱딱한 책이 아닌 애니메이션 동영상물과 각종 소품, 게임을 이용해 재미있고 활기차게 진행할 수 있도록 꾸몄다.
예를 들어 ‘친구들의 장점 빨리 말하기’ ‘인터넷에서 당하는 불쾌한 경우를 얘기해 보세요’ 등 게임 형식으로 상황별 도덕적 판단력을 기르도록 하는 프로그램도 포함됐다.
또 ‘왕따 체험해 보기’ ‘부모 역할 해보기’ 등 역할 바꾸기를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합리적인 이해심과 포용력을 기르도록 했다. 이 밖에 ‘존경하는 위인 따라 해보기’ 등을 통해 스스로 도덕적 원칙과 목표를 세우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교재는 교육부가 서울대 교육연구소에 의뢰해 개발한 것으로 지난해 11월 말 전국 초등학교 교장을 대상으로 시연회를 가졌으며 이달 중순경 관련 책자와 CD로 발간 배포된다.
프로그램 개발 책임을 맡은 서울대 문용린(文龍鱗·교육학·전 교육부 장관) 교수는 “과거 가족 중심 사회에서는 가정에서의 주입식 도덕교육이 학교교육을 보완했지만 또래집단 또는 인터넷 등과 같은 군중 중심의 현대사회에서는 도덕률에 대한 개개인의 독립적 판단이 강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이 같은 이론적 배경을 바탕으로 자기리더십 프로그램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왜 바뀌나=교육부가 이 프로그램을 개발한 것은 학교폭력, 왕따, 시험부정행위 등이 사회문제화하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초기단계의 인성교육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서울대 교육연구소와 사단법인 ‘밝은 청소년 지원센터’가 지난해 전국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도덕적 판단이 필요했던 사례’에 대한 조사 결과도 우려할 만한 수준이었다.
조사에서 상당수 초중고교생들은 “서로 다른 과목을 잘하는 학생들끼리 답을 교환하는 것이 큰 잘못인가” “집단따돌림은 나쁘지만 그 학생이 평소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면 당연한 결과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것.
또 “길 가던 여학생을 동네 친구들과 강제로 집단 성추행한 적이 있지만 또래 집단에 남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는 등의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문 교수는 “잘못을 저지른 학생들이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주체적인 도덕적 판단능력과 행동력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 도덕교육의 패러다임이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