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04-09-21 01:21]
[동아일보]
《“오늘 수업시간에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게임한 학생은 손들어 보세요.”
15일 서울 강남의 D중학교 3학년 교실. 기자의 요청에 슬금슬금 손을 든 학생은 21명. 휴대전화를 가진 28명(학급정원 35명)의 75.0%였다. 하지만 이날 교사에게 적발된 학생은 단 한 명. 14명이 자판을 다 외우는 ‘엄지 족(族)’이어서 교사는 학생의 ‘딴 짓’을 알아채기 어렵다. 휴대전화 때문에 수업에 몰두하지 못하는 초중고교생이 늘고 있다. 눈은 칠판을 향하면서도 손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게임을 하느라 책상 밑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수업 중에도 휴대전화는 ‘온(On)’=동아일보가 서울의 7개 초중고교생 24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휴대전화를 가진 134명 가운데 107명(79.9%)이 “수업시간에도 휴대전화를 켜놓는다”고 답했다.
중학생은 55명 가운데 41명(74.5%), 고교생의 경우엔 61명 가운데 단 한 명을 제외한 60명(98.4%)이 휴대전화를 끄지 않고 수업 중에 메시지를 보내거나 게임을 하고 있었다.
고등학생의 90.2%, 중학생의 65.5%가 “수업시간에 메시지를 보낸 적이 있다”고 답했고 “게임을 하거나 화상을 본 적이 있다”는 응답도 각각 60.7%, 50.9%였다.
심지어 서울 강남 A고에서는 하루 평균 400개의 메시지를 보내며 한 달 평균 요금이 15만원이나 되는 학생도 있었다.
수원 창현고 김철환 교사는 “휴대전화가 옛날처럼 교사의 수업을 방해하지는 않지만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을 하지 못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학교는 휴대전화와 전쟁 중=서울 강북 B중에서는 이달 초 남학생이 카메라폰으로 여교사의 치마 속을 촬영하다 발각돼 충격에 휩싸였다. 이 학교의 한 여교사는 “학생이 두 명의 여교사를 찍었는데 첫 번째 교사는 자신이 찍힌 줄도 몰랐다”며 “어디서 어떤 장면을 찍힐지 불안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 C중 허모 교사는 “아이를 체벌하려 들자 옆자리의 아이들이 ‘선생님, 애들이 찍어요’라고 말해서 움찔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강북 D중학교는 시험시간에 휴대전화로 부정행위를 한 2명을 ‘0점’ 처리했다. 실제 대부분 중고교는 부정행위 때문에 시험 시작 전 휴대전화를 걷고 있다.
서울 청운중 김성룡 교사는 “체육시간에 운동복 주머니에 휴대전화를 넣어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는 학생들도 적지 않지만 잃어버릴까봐 가지고 나오지 못하게 할 수도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대안은 없나=교사들은 학생들을 제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부모들도 방과 후 학원 등으로 바쁘게 움직이는 자녀와 수시로 연락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휴대전화 소지에 대해 긍정적이다.
서울 대명중의 한 교사는 “휴대전화를 빼앗으면 며칠도 안돼 부모들이 찾아와 돌려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생들에게 휴대전화와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제대로 가르쳐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운중 임동원 교장은 “디지털 시대에 앞서가려면 어려서부터 첨단 기기에 익숙해지는 게 좋다”며 “문제는 어떻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밝은청소년지원센터의 임정희 회장은 “성인도 회의시간에 전화를 끄기 어려울 만큼 자기 통제가 쉽지 않다”며 “복도에 휴대전화 보관함을 마련해 교실에는 휴대전화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