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 기금」의 상임이사 임정희씨(42)는 스스로를 「펀드 레이저(Fund Raiser)」라 부른다. 펀드 매니저와는 다른 개념. 펀드 매니저가 이미 보유하고 있는 돈을 관리한다면 펀드 레이저는 돈을 끌어모은다. 가정문화 개혁을 위한 교육사업을 하는 (주)티티컴 대표인 임씨. 그녀가 펀드 레이저를 자처하며 돈을 모으는 것은 여성인권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임씨는 국내 여성운동의 큰 문제점의 하나로 열악한 재정을 꼽는다. 여성운동 참가자들이 생존권 자체를 위협받을 정도여서 역량있는 인력 축적이 어렵고, 이는 여성운동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것. 누구나 이를 알고 있지만 체면 등을 생각해 나서지 않는게 현실이다. 임씨는 지난 7월 발족한 여성 인권운동을 지원하는 모임인「여성인권 기금」의 상임이사 자리를 맡았다. 기금은 음악회나 전시회·바자 등 이벤트나 후원의 밤 등을 통해 모을 계획이다. 현재는 삼성생명이 사내 교육용으로 제작한 성희롱 예방지침서 「위험한 접속」의 판권을 획득, 그 판매 수익금을 기금에 보태고 있다. 오는 25일엔 창립기념 후원의 밤을 개최하고, 다음달엔 전시회, 바자를 열 계획. 그러나 돈을 기부받는 일이 쉽지는 않다. 임씨는 직접 기업체를 찾아,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당부한다. 거부당할 때가 많지만 개의치 않는다. 기업으로서는 지원의 효과를 따질 것이고 거절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열린 자세다. 『아직 자랑할 만큼 실적은 없어요. 그러나 내년 초쯤엔 액수가 얼마가 됐든 여성단체에 지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화여대 출신의 임씨는 여성운동 가운데서도 가정문화 개혁에 관심이 많다. 남녀가 서로에게 인격적인 면은 빠뜨린 채 도구적 역할만을 요구하는 우리의 상황을 바꾸고 싶다.